한일영 씨의 고통과 한국의 과거 인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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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9. 11. 00:24
1. 강제 수용의 시작
한일영(66) 씨는 한국 현대사에서 잊혀진 인권 침해의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로, 그의 삶은 국가에 의해 다섯 차례 강제로 수용된 비극적인 경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이야기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한 씨는 여름방학을 맞아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 성북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평범한 여정은 삼선교 근처에서 경찰에 붙잡히면서 비극으로 변모했다. 경찰은 그를 무작정 파출소로 끌고 갔고, 그는 자신이 가평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부모님도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말은 무시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고, 그는 이후 강제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겪게 된다.
2. 부랑아로 둔갑한 삶
한 씨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며 피아노 레슨을 받을 정도로 안정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경찰 기록에는 그가 ‘종로3가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부랑아’로 남게 되었다. 이는 그가 강제로 수용된 후, 사회에서의 정체성이 완전히 왜곡된 결과였다.
그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거쳐 선감학원으로 보내졌고, 이곳은 부랑아 교화를 명분으로 소년들을 강제 수용한 시설이었다.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위치한 선감학원에서 한 씨는 강제노역과 폭행을 당하며 혹한 속에서 일해야 했다.
그는 동상으로 인해 왼발가락 세 개를 잘라내야 했고, 이러한 신체적 고통은 그의 정신적 상처와 함께 평생 그를 괴롭혔다. 1975년, 그는 탈출을 시도하여 인근 섬으로 도망쳤지만, 많은 아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고향인 가평에 도착했을 때, 그의 부모님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고,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3. 삼청교육대 강제 수용
한 씨는 새로운 삶을 위해 프레스 공장에 취직했지만, 1980년 여름 휴가 중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에는 성동경찰서로 끌려가 삼청교육대에 보내졌다. 그의 왼손 팔목에 새겨진 문신이 문제였다. 이 문신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새긴 ‘삶’이라는 글자였다.
삼청교육대에서 그는 다시금 강제 수용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곳은 정치적 이유로 수용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시설로, 그곳에서의 생활은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도주를 시도했지만 붙잡혀 공주교도소에서 1년을 보내야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남겼고, 이후에도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찰의 괴롭힘으로 인해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해야 했고, 그는 사회에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 했다.
4. 삼청교육대 재심 무죄
2020년이 되어서야 한 씨는 삼청교육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가 두 차례 서울시립갱생원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한 씨는 잊고 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는 1977년 미아리 자활근로대에서 넝마주이를 하다 경찰에 단속되어 서울갱생원으로 강제 수용되었다. 이곳은 가혹 행위가 만연한 시설로, 낮에는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한 씨는 “같은 범죄를 여러 번 저지르면 가중처벌을 하는데, 내게 있어서는 국가가 가중처벌감이었다”고 회상하며, 국가의 폭력적인 정책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꿔 놓았는지를 고백했다.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5. 과거의 진실과 국가의 책임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한 씨와 같은 다중 피해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위원회는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 등에서의 인권 침해 사건을 규명했다. 이 시설들은 1975년 정부의 부랑인 단속 및 강제 수용을 근거로 운영되었으며, 부산 형제복지원도 같은 맥락에서 운영되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은 1987년 인권 침해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서울시립갱생원은 그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인 피해 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으며,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일영 씨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역사적 과제를 상징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